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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한겨레21:55내 속에 캥거루가 있다면 믿지 않겠지요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캥거루가 새끼를 주머니에 안고 겅중겅중 뛸 때 세상에 별 우스꽝스런 짐승이 다 있네 그렇게 생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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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보고 싶은 친구에게 한겨레21:45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. 언녕. 친구.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.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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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첫 한겨레21:45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, 당신의 첫.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, 그건 내가 모르지. 당신의 잠든 얼굴 속에서 슬며시 스며 나오는 당신의 첫. 당신이 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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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한겨레21:40映畵(영화)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(군)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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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북 치는 소년 한겨레21:40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-2024년 현역 시인들 설문조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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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어떤 싸움의 記錄(기록) 한겨레21:35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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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자화상 한겨레21:30애비는 종이었다.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.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.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…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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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農舞(농무) 한겨레21:25장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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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한겨레21:15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(燒酒)를 마신다 소주(燒酒)를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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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꽃 한겨레21:15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.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.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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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혼자 가는 먼 집 한겨레21:10당신……,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,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,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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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풀 한겨레21:10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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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빈 집 한겨레21:10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,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,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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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흰 바람벽이 있어 한겨레21:05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(十五燭)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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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인의 마을] 사랑의 변주곡 한겨레21:05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라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...